유가를 결정하는 것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생산국에서 생산을 줄이거나 경기가 좋아져 수요가 늘면 시세가 오르고, 생산국에서 증산을 하거나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면 시세가 내립니다.
그 외에 중요한 요인은 달러 시세입니다. 원유는 주로 미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입니다.
달러 시세가 오르면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원유를 살 수 있습니다. 달러가 강세면 1달러로 살 수 있는 원유가 1배럴에서 2배럴이 되고, 수입국 입장에서 배럴당 1달러였던 것이 0.5달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러시세와 원유 시세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1970년대 중반 미국과 중동 산유국이 협약을 맺었습니다. 원유 결제를 달러로 결제하고 중동 산유국 정부를 국내외의 다양한 군사 공격에서 보호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원유와 달러 수요가 같이 늘면서 달러도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동은 지정학적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요충지입니다. 외교, 군사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중동이 최고의 원유 생산지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중동은 항상 전쟁중인데요, 국가별, 국가내 다양한 종교분쟁과 권력분쟁이 크고 작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 세력도 중동의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이 분쟁에 끼어들기도 하고, 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다양한 외세가 끼어 들어 이 분쟁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까지 이란에서 오일메이저 업체를 통한 중동 원유 개발, 판매 사업에서 다른 나라보다 특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 뒤, 혁명정부가 중동 산유국을 이끌어 미국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그 해에 이라크를 집권한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했고, 이란 혁명정부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1988년 휴전으로 끝나고, 이후 미국은 이란과 대치했습니다. 1990년대 이라크와도 원유를 이유로 전쟁을 벌입니다. 이라크도 이슬람 국가이자 우너유 부족인데요. 후세인 집권 전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친미 정권이어서, 미국 정유사에 유리한 원유거래를 했지만 후세인 집권 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후세인은 원유자원에서 외세를 배제할 생각이었고, 이란과 전쟁을 하는 동안은 미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1990년 친미국가인 쿠웨이트를 침공했습니다. 이 공격이 걸프만에서 벌어진 제1차 걸프전입니다. 바로 미국은 반격했고, 다음해 이라크는 패했습니다. 하지만 후세인은 계속 정권을 유지하며 미국과 대적했는데요. 미국 정유사와 거래를 끊고, 원유를 프랑스와 러시아에 팔았습니다. 결제대금을 유로화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1년 9월 알카에다 이슬람 무장 세력이 항공기로 뉴욕국제무역센터로 돌진한 911테러가 발생합니다. 미국은 테러 배후로 이라크를 지목하고 2003년 이라크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든다며 이라크를 침공해서 제 2차 걸프전을 일으킵니다. 이라크는 바로 제압되고,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대량살상무기는 핑계일뿐 석유 이권 때문에 이라크를 친것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200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이 기존 석유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후세인 제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이라크전은 2011년 말에 끝났고, 이라크는 미군 주둔아래 다시 친미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미국은 오랜시간 많은 비용을 들이며,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에 친미 정권과 석유 이권을 확보했습니다.